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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의 기법 / 김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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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06회 작성일 17-09-04 09:02

본문

스컬레이터의 기법

 

김희업

 

 

30도의 기울기란

마음이 먼저 쏟아지지 않는 경사

알 수 없는 자력이 몸을 곧추세운다

그냥 밟고만 있어도

높이가 커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굳이 거슬러 내려가지 않고

계단의 물결에 발을 맡길 것이다

거슬러 오르는 멋진 오류는 연어의 일

한계단씩 베어 먹은 사람들의 높은 입

그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날마다 입을 벌린다

외마디 비명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현기증

어떤 뒷모습이라 할지라도 바라보면 쓸쓸하고

꼭 그만큼만 보여주는 생의 짧은 치마

넘치지 않는 저울질로 평등하게 내려놓고

빈 계단만 층층이 접히는 지평선

맞물린 관계 속에

서로 먹고 먹히는 다정한 세계

기울어진 생계를 떠안고

마음이 쓰러지지 않게

흙이 묻지 않는 보법으로 반복되는 생성 소멸

오늘밤

달은 발자국 남기지 않고 가던 길을 갈 것이다

 

- 김희업 시집 비의 목록(창비, 2014)에서

 

 

김희업.jpg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칼 회고전』 『비의 목록

17회 천상병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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