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값 갚는 날 / 김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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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05회 작성일 17-09-12 14:21본문
외상값 갚는 날
김회권
아내가 쥐어준 에어컨 수리비 오만 원
장터목 샛길로 들자 윷판이 한창이다
외람되게 자꾸 쏠리는 눈길
잘하면 공돈에 막걸리가 절로 굴러올 거란 생각
나는 마부에게 돈을 걸고 멍석에 쭈그리고 앉아
내 생애 가장 빛났던 날을 떠올리며
허공 가득 종기윷을 뿌린다
길들인 순한 양처럼 다소곳이 모이는 윷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내리 세 판을 이기자 단박 손에 쥔 뭉칫돈
세상일도 요리 잘 풀리면 오죽 좋으랴
순간 뱁새눈으로 날 흘겨보는 상대
이번 막판 덮어쓰기로 끝장내잔다
나는 이 판 이기면 매몰차게 일어서리라
그리하여 오늘을 시발로 몇 날 동안
아름다운 술고래로 즐겨 살리라
땀 배인 손 문지르며 허공 가득 윷을 붓자
일제히 뒤를 쫓는 비릿한 눈빛들
그때 윷 하나,
급작 항로를 이탈하나 싶더니
그만 맨땅에 곤두박질이다
눈 앞 깜깜히 바서지는 파편
땅이 푸욱 꺼지다
- 김회권 시집『우아한 도둑』(푸른길, 2017년)에서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2002년《문학춘추》로 등단
시집『숲길을 걷는 자는 알지』『동곡파출소』『우아한 도둑』
산문집『뜨락에서 꽃잎을 줍다』『꽃처럼 웃다가 주름진 얼굴로 가라』 등
2006년, 2009년, 2017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2013년 광명신인문학상, 2015년 오산신인문학상, 복숭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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