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은 유통기한이 문제다 /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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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38회 작성일 17-09-15 08:57본문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문제다
이영수
통조림은 죽는 날짜를 궁둥이나 이마빡에 붙이고 태어난다 수천의
쌍둥이 형제들 포장된 채 어딘가로 간다 쿨렁쿨렁 메스꺼운 속을
토하고 싶어 서로 등을 밀며 건더기들이 한쪽으로 쏠린다 상처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기억 꼭꼭 봉한 채 내 이식된 뿌리들 썩고 있다
진열장에 층층이 포개진 기억의 집도 붉은 반점의 저승꽃 피어 죽음이
스며난다 진공상태로 내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영영 기한이 지나지
않길 빈다 만일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천만 년 후로나 적어 살아 있음을
자유롭게 하리 누가 망상의 내 눈꺼풀을 잡아당겨 눈 속을 들여다본다
그때 내가 처음 물어야 할 것은 포장된 기억에 관한 것일까 내 이식된
외눈의 슬픔이 하늘을 닮아 푸르냐고 묻고 추억이 상하지 않았는지
맛보아야 할까 찌그러진 통조림은 급하게 토한다 너무 오랫동안 숨을
못 쉬었나
- 이영수 시집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천년의 시작, 2002)중에서
경남 함안 출생
199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 당선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고양이 속의 아이를 부탁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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