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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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58회 작성일 17-11-21 09:54본문
저공비행
최형심
조용한 사람들 곁에는 조용한 봄이 와서 머물렀다. 낮은 목책에 와 울음냄새를 맡아볼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소리에 인적 드물어지면 무거워진 물방울들이 수호초 곁을 떠났다.
수학자들의 날에는 곡선에 맞춰 하루를 보냈다. 지구 반대편만큼 먼 별이 또 있나……, 발바닥을 자주 내려다보았다.
묵음을 짚은 어릿광대들, 옆걸음으로 천년을 가서 은비늘 아래 들 수 있을까. 하절(夏節)에 이른 자들의 이름이 길어지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은 오월의 행성들처럼 기차를 타러 갔다.
새들의 계절에는 청란(靑卵)을 품은 나무들이 계단의 표정에 다가가 앉았다. 낮은 물자리 위로 나비의 숨소리가 내려왔다.
이안류에 쓸려간 화요일처럼 휘파람에 굽어진 할미새가 골목 안을 들여다보았다. 풀숲이 불쑥 푸른 혀를 내밀어 계절이 없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곳,
물수제비를 뜨는 저편에서 밥 타는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한쪽 눈을 감는다. 까만 젖꼭지에 물린 그리운 계급들 보리밭으로 가고
아무렇게나 머리를 허공에 꽂으며 사람들은 슬픔이 발보다 크다 했다. 종이박스 안,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어디도 가지 않았다.
—《시와 표현》 2017년 8월호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현대시》등단
2009년《아동문예》문학상 수상
2012년《한국소설》신인상 수상
2014년《시인광장》시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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