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묶여 있던 밤을 기억한다 / 오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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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97회 작성일 18-01-31 13:48본문
낙타는 묶여 있던 밤을 기억한다
오 늘
우리들은 무엇과 싸우나.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 싸우나.
다음 날 아침이면 엘리베이터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쓴 그녀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힐(stiletto heel)의 독한 높이는 내가,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는 아름다운 그녀가 가진 유일한 편협함이다. 우리가 서로의 편협함에 몰입하는 한 세계는 충분히 외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아름다움이란 말이 얼마나 지독하고 못된 말인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녀의 슬픔을 마음대로 끄덕이는 수군거림은 밤새 하수구 안에 고여 있는 그녀의 울음소리보다 더 지독하다.
의지를 가지고 짓는 죄, 그러므로 몸이 시키는 슬픔.
우리는 종종 들리는 것도 아니고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갇힐 때가 있다. ‘그런 줄 알았지’ 라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지독한 혐오의 말이 또 어디 있는가. 무엇인가가 아름다움으로 지정될 때 아름다움 밖의 것들은 종종 자기혐오가 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서 해야 할 것을 할 수 없게 되면 남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게 되는 것.
그녀의 붉은 립스틱이 그러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게 하는 나의 붉은 힐(stiletto heel)이 그러하다. 여기저기에서 위층 그녀인 척 하는, 그녀인 듯한 그녀들과 마주친다. 그녀들 또한 아래층의 나를 알아볼 테지만 절대로 아는 척하는 일은 없다. 우리는 분리될 수 있을까? 모든 감정은 통정이다.
뱉자마자 낡아지는 말. 처음, 우리, 믿음 그리고 초콜렛.
때때로 그녀와 내가 헷갈린다. 짙은 선글라스와 붉은 립스틱은 무의식의 지배. 유한한 존재로서 한계를 의식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범주 안에서의 ‘무한’일 뿐. 그녀와 내가 품은 이데아는 실재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써의 이데아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달콤한 내 힐(stiletto heel) 역시 그러하므로.
그러므로, 낙타는 묶여 있던 밤을 기억한다.
힐 밖으로 풀려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낮을 벗어날 수가 없다. 실재를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들 사이로 무턱대고 밤이 몰려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동일체로 묶여있는 것들의 뒷모습은 눈물겹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아니 나는, 아니 그녀는 반드시 묶여 있던 지난밤의 기억을 끊어낼 것이다.
2006년 《서시》로 등단
시집으로『나비야, 나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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