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인 / 최기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04회 작성일 18-04-09 11:41본문
오래된 연인
최기순
저 유리창을 꽉 채운 나무 그림자가
하나의 현상이라면
서로 겹처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지나온 시간은 질량이다
그렇다면
처음 그대가 나를 채운 것을 현상이라고 해도 되나
그렇게 붙박혀 지나온 시간을 질량이라 해도 되나
나무가 제 안에 현상되는 걸 유리창이 바라보듯
바라본 시간의 정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대와 나의 사랑이 시작된 곳
단지 허공에 불과했던 그대가
한 덩어리 에너지로 심장을 강타한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대가 우주 속을 한 점 기포로 떠돌았다면
나는 적도의 마른 모래
동시에 한 생의 장막을 움켜잡는 손가락
혹은 내가 그대 몫의 그릇을 다 비우고도
집요하게 긁어대는 빈 숟가락은 아니었을까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무한궤도를 돌며 이렇게
- 최기순 시집 『음표들의 집』(푸른사상, 2013)에서
경기도 이천 출생
2001년《실천문학》등단
시집으로『음표들의 집』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