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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신념 / 정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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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128회 작성일 15-09-23 09:58

본문

굴욕의 신념

 

정진경

 

 

몸을 가눌 데 없어 땅으로 누운

선인장 화분을 역방향으로 돌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인장은

제 몸을 45˚로 일으켜 지탱하더니

어느 날은 태양을 응시하며

반대로 기울어져 있다

제 삶을 함부로 손댄 나에게 선인장은

굴욕을 느낀 것 같다

선인장은 그저 제 피에 흐르는 유전자대로

사막이 아닌 도시에서도 맹렬히 살아온 것뿐인데

내 잣대로 선인장을 간섭한 것이다

굴욕이 만들어내는 몸 형상이 좋아

선인장이 어디로 향하는지 눈여겨 지켜본다

태양을 향해서라면 기꺼이

제 몸을 구부리는 선인장 신념이

내 생을 굴욕으로 만든 기억마저 같이 구부린다

기형인 선인장 몸은

생을 힘겹게 고민한 흔적이지 장애가 아니야!

스스로를 지탱하려고 용을 쓰는

선인장에게 나는 파이팅을 외친다

유연하게 등뼈를 휘고 있는 선인장

가시 돋은 꽃들이 빨갛게 웃는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알타미라 벽화』『잔혹한 연애사』『여우비 간다』(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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