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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 김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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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55회 작성일 15-09-2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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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윤이

 

국숫발이 소쿠리 찬물에 부어지는 소리 들렸네

차―ㄹㄹ 불지 않고 물기 머금은 리을이 최초의 소리 같았네

잠귀로 들으니 밥쌀 이는 소리보다 더 가늘게 흐느끼는 그 면이 된 것도 같았네

국쑤 먹으련. 굶은 낯짝으로 내리 자면 맘이 편튼?

아뇨. 나는 몸 좀 아팠기로 쌀쌀맞게 말을 싹둑 자르고 노상 병상춘추 도시 거추장스런 세월 모르리 길게 누웠네

 

전생의 사랑방에서 그이가 히이야‚ 내 이름 불러 불과 함께 껐으리

재떨이에 담뱃불 바지직 이겼으리

그러면 난 날 싫어하셔 혼자 자실랑가, 아양도 간드러졌으리

 

혼몽으로 흐트러진 면인 듯 그이 민낯을 말아 쓸어안았네

내가 사는 한줌거리 머리칼과 피부를 빠져나가 경황없이 날 버리고 돌아온 마음이 찼네

차고 또 날이 많이 차 집안에 오한이 들었네 비로소 국수가 먹고 싶었네

 

쇠붙이가 없어 철판을 주워다 칼로 썼다는 도삭면(刀削麵)

그러나 먹어보고픈 최초의 사연 반죽덩어리

입마개에 걸려나온 듯이 국쑤 말고 밋밋한 국수라는 말을 곁들이면

정말 환하고 가늘은 면이 야들야들한 여자의 피부처럼 온갖 것 말쑥하게 벗고

서슬 퍼런 세상전쟁 같은 건 맹세코 모르리 나, 마냥 잊어버리고

불 그슬린 맨발인 듯 광막한 설원을 질러서라도 억분지(億分之) 일인 그일 찾으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여 백수를 잇게 하리 너만은 내게 그러면 안 되네 목 놓아 울지 않고 천수를 잇게 하리

잃어버린 마음 하나를 끓인 고열에서 최초로 건져 올리리

 

국수가 빚어지는 동안 안녕이 염려되어 그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최초의 사랑

그런 한물간 시간을 살고 싶었네

아아― 나는 바직바직 애가 밭고 탈날 노릇으로 반생을 앓아

만 궁여지책 내생을 이어 붙였네

전 생애 최초의 반죽덩어리 도로 썰며 다쳐도 좋아 하였네

정갈히 차리기 전 적셔다 놓고 적셔다 놓는 물고랑 소리로도

성큼 온 그가 기다리는 것이어서 하여 아흔아홉 좋이 될 물굽이인가

작심으로 뜯는 육고기 살점 말고 그만그만한 한가락 연이은 한가락, 국수로 연명하고플 따름이었네

 

 

kim-yooni-140-2.jpg

 

1976년 서울 출생. 본명 김윤희
2006 연세대 윤동주 문학상 시부문 수상
2006 계명대 계명문화상 시부문 수상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독한 연애』『뒤뚱뒤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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