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사랑해 / 신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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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33회 작성일 18-06-16 16:30본문
미안해 사랑해
신단향
화랑유원지 옆 농작물 실습지는 해바라기 군락지였다가
밀밭이었다가 해맑은 구름의 놀이터이기도 했는데
오늘은 대형 애드벌룬에
‘미안해’ ‘사랑해‘란 두 말
커다란 꽃송이로 피워 날리고 있다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 뒤척이며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한 사랑과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두 송이 꽃이
애드벌룬 밧줄을 따라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여름 후끈한 열기에 축 늘어진 애드벌룬
사랑해와 미안해를 힘겹게 들어 올리고
간간히 미안해는 사랑해의 농염한 몽우리 앞에
풀꽃의 목소리로 소곤거린다
미안해의 연한 소곤거림이 들릴 것도 같아
귀 기울이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미안해의 부릅뜬 눈이 펄럭, 깃발로 삿대질 한다
미안해에 무관심하다고 웃어라 웃어라 윽박지른다
실실 웃음 흘리는 붉은 페인트 입술을 내밀다 눈을 떴는데
사랑해가 펄럭펄럭 미안해에게 앵돌아져 있다
멀리서 바라보던 햇살이 사랑해의 품속에 숨어들고
건너 아파트 검은 유리창에게로
사랑해에 숨어든 햇살의 잔물결 번져간다
유원지 넓은 마당에
미안해와 사랑해의 미소 군락이 번지고 있다
- 신단향 시집『상록마녀』(애지, 2018. 5)에서
대구 출생
2012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고욤나무』『상록마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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