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잡이 / 이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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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51회 작성일 18-07-26 15:39본문
총잡이
이동호
며칠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권총만 종일 만지작거린다
몸속에 총알이 가득 찰 때마다 몸이 근질거리는 것은
내가 타고난 총잡이이기 때문이다
난사亂射는 하수나 하는 짓이다
나는 화장실 변기통을 향해 권총을 정조준한다
총알에 맞은 물들이 튀어 올랐다가 축 늘어진다
죽은 물은 관을 타고 정화조에 가 묻힌다
정화조는 죽은 물들의 공동묘지이다
며칠째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속상했다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으면 좋겠다
나는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고 강도를 응원하며,
그가 영원히 잡히지 않기를 신에게 빌 것이다
나나 당신이나 시건장치를 풀 용기가 없는 자이다
사타구니에 총을 차고 수시로 은행 문을 드나들겠지만,
총을 한번 폼 나게 제대로 빼어든 적 있는가
텅 빈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총알이 박힌 듯 아프게 은행 문을 돌아서 나왔던
불쌍한 당신이나 나나,
축 늘어진 총구를 세워 달마다 여자 몸속의
둥근 표적을 향해 무수히 연습 사격을 한들,
총알 낭비 아니겠는가
- 이동호 시집『총잡이』(애지, 2018)
1966년 경북 김천 출생
대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및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
200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조용한 가족』 『총잡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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