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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호 / 박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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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35회 작성일 18-07-31 17:57

본문

불가능한 호

 

      박장호

 

 

너의 여자 친구는 말수가 적었지

그녀는 물의 나라에서 왔다고 했지

말 속의 얼음이 녹는 나라

나는 얼음의 나라에서 왔지

흘러온 말이 얼어붙는 나라

 

물을 얼리듯 얼음을 녹이듯

너는 그녀와 나의 말을 통역했지

한국의 여름은 견딜 만하군요.”

여름엔 시원한 것이 많으니까요. 한국은 겨울에도 지낼 만해요.”

……겨울엔 따뜻한 것이 많으니까요?……

너를 통해서 결빙과 해빙이 반복됐지.

나의 어는점이 그녀의 녹는점

그녀의 녹는점이 나의 어는점

우리는 입이 필요 없는 온도를 알게 됐지

예의를 잃고 조용해질 대로 조용해져

우리는 물속에 얼음 씨앗을 심었지

 

순식간에 자란 나무

열매 녹아 흐르는 대로

다시 얼어 오르는 영도의 나무

 

너는 우리에게 말을 재촉했지

우리는 너에게 말 없는 흉이 같았지

너만 모르는 말을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지

 

얼음의 나라로 돌아온 내게 너의 전화가 걸려왔지

너는 그녀와 끝났다고 했지

그칠 줄 모르는 결정 장애, 완전히 여자 호라고

나는 얼어붙는 물의 말을 매만졌지

너에게 여자 호는 불가능했지

그날 이후 그녀는 나를 향해 흘렀으니까

호 역시 너에게 불가능하지

나는 그녀의 말 속에서 얼어붙고 있으니까

 

너의 존재가 부질없는 날

어는점 밑으로 뚝뚝 떨어지며

나는 그날의 나무를 생각하지

이젠 한국에 가지 못하지

   

- 월간 시인동네20188월호




1975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년 《시와 세계》 등단
시집 『나는 맛있다』『포유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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