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10 / 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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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16회 작성일 18-08-27 09:25본문
말년.10
하종오
중랑천 천변 동네엔 집집마다
반지하에 공장이 있었다
봉제공장 가방공장 편물공장 프레스공장
반지하공장마다 낮에도 알전구를 켜놓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중랑천 둑을 걸으면
반짝이는 물빛보다 환한 알전구 불빛에
절로 고개 돌려져 오래 내려다보다가
셋방으로 돌아와 형광등을 켜고
방바닥에 엎드려 읽다가 만 책을 다시 읽었다
말년에 시골 동네에 집을 지어 지내며
삼파장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읽다가
문득 눈 감으면 떠오르는 아스라한 젊은 날,
중랑천 천변 동네 반지하공장 알전구 불빛 아래서
머릿수건을 하고 미싱 돌리던 옆모습들,
말년에 어디서 어떤 전등을 켜며 저녁을 맞을까
중랑천 둑에서 유모차를 탔던 아이는
이제는 제 아기를 키우는 어른이 되어
중랑천 천변 동네 반지하공장 알전구 불빛 아래서
당시 만들어진 제품이 수출되었던
이국의 강변 동네에 가 살면서
가등이 아름다운 강변길에서
유모차를 밀며 산책한다고 한다
- 계간 《시산맥》 2018.가을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 『쥐똥나무 울타리』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물의 운명』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정』 『깨끗한 그리움』 『님』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지옥처럼 낯선』 『국경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베드타운』 『사월에서 오월로』 『넋이야 넋이로다』
『입국자들』 『제국』 『남북상징어사전』 『신북한학』 『남북주민보고서』
『세계의 시간』 『신강화학파』 『초저녁』 『죽음에 다가가는 절차』등
시극집 『어미와 참꽃』
동화 『도요새』 『누가 아기 석가모니로 태어났을까』 『미래에 오는 미륵불』 『하늘 무인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제1회 불교문예작품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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