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에 가는 이유 /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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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79회 작성일 18-11-09 08:58본문
내가 강에 가는 이유
장옥관
사람들은 묻는다, 왜 강에 가느냐고. 인적 드문 적막 강변에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아내가 싸 준 도시락 들고 집 나서면서 나도 물어본다. 나는 왜 강으로 가는가. 비둘기를
실은 낡은 바퀴 구슬프게 굴러가고 시절을 잊은 시집은 차 바닥에 뒹구는데 부지런한
버스가 부려놓은 씩씩한 공장 지나쳐 나는 왜 날마다 강으로 가는가. 반듯한 교과서
명랑한 군대, 나날의 구름 안색 저리 훤하건만 눈 흘기는 물총새 삐죽이는 자갈 비웃음
받으며 평일 대낮에 나는 왜 강으로 가는가.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 찾을 길 없을 때 풀숲
자갈밭에 퍼질고 앉아 밥이나 먹는다.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식은 쌀밥은 말없음표처럼
촘촘하고 흰 두부의 먹먹함 사이 비쩍 마른 멸치의 서러움을 키 큰 붉은 여뀌 목 빼어
기웃거린다. 태풍 매미에 할퀸 제방은 벌건 살점을 드러내고 손발 다 잃은 버드나무 찢어진
비닐을 날개인 양 달고 서 있다. 거센 물살에 떠밀려와 눈뜬 채 제 살점 개미떼에게
떼어 주는 참붕어. 모로 일제히 쓰러진 갈대풀 속에는 누가 옮겨 놓았을까, 붉은 우단
의자 하나. 그 위에 내려온 하늘이 턱 괴고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예나 제나 한결같은
모습은 쉼 없이 부닥쳐오는 입술에 귀 맡겨둔 물 속의 돌멩이. 어룽대는 물빛에 내 낯빛
비춰보고 저물녘 나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와서는 말하리라. 돌멩이 얼굴에 꽃이
피었네, 능청 부리면 짐짓 모르는 척 받아주는 아내의 몸에 찰박이는 물소리는 서럽게
내 몸에 울려 퍼지리라.
-장옥관 시집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에서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 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1987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황금 연못』 『바퀴 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김달진문학상, 일연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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