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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는 항구다 / 박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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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18-11-19 09:57

본문

전당포는 항구다

 

    박형권

 

 

방세 두어달 밀리고 공과금 고지서는 쌓여만 가는데

죽을 땐 죽더라도 삼겹살 몇 덩이 씹어보고 싶어서

전당포 간다

육질이 쫄깃했던 내 젊은 일회용 반창고처럼 접착력이 떨어져

오늘 하루 버티는 일에도 힘껏 목숨을 건다

언제나 돈 떨어지면 공연히 허기지는 것처럼

봄비 내리면 입이 궁금해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김치! 김치! 벙싯벙싯 웃었던

수동식 디카를 맡기고 십만원을 받는다

고기도 고기지만 우선 급해서

잔치국수 곱빼기! 커다랗게 시켜놓고 디카를 먹는다

필름 없는 국물에

찰칵찰칵 떠오르는 식구들을 먹는다

처음 내린 서울역 국밥집에서 땀 흘리며 씹었던 나의 쓸개는 어디 갔나

홍릉수목원 생강나무 옆에서

나에게 쏟아지던 샛노란 양념, 온몸에 스며들 때까지

꾹꾹 절여놓은 나라는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먼 것 당겨주고 벅찬 것 밀어주던 디카, 허기 속에 밀어넣고

우적우적 깍두기를 씹으며

울렁거리는 서울을 새삼 사랑한다

멀미로 채워진 위장을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개나리 흐드러진 정육점이 아련한데 고기 생각 어디론가 사라지고

봄비 내린다는 이유 하나로

저기 저 내가 전당포 간다

그래, 불러야겠다 이쯤에서는

아직도 잔술을 파는 골목 안 밥집처럼

전당포는 항구라고



- 박형권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창비, 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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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부산 출생
경남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우두커니』 장편동화 『돼지 오월이』『웃음공장』『도축사 수첩』

전당포는 항구다』 등

제17회 수주문학상, 제2회 애지문학회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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