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까마귀가 /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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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56회 작성일 18-11-23 11:19본문
까치와 까마귀가
이생진
먼저 까치가 짖더니 뒤 이어 까마귀가 짖는다
여러 마리가 연달아 짖는다
백와 흑의 파로워(follower)들이다
그 소리를 검색해보니
공갈과 협박
내가 떠돌며 쓴 시가 모두 가짜란다
가짜라는 뜻이나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이상하게 까치와 까마귀에게 당하는 기분이다
걸어온 길이 겨우 1km가 채 안 되는 짙은 안개 속
은행나무는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털어버리고
겨울에 덮을 나뭇잎 하나 가진 것이 없다
9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저렇게 빈손으로 서 있는데
까치와 까마귀가 나를 향해 거침 없이 짖는 소리는
떠돌며 쓴 시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오늘은 이상하게 그런 기분이다
그들이 뒤따라오며
내 행동을 지켜본 듯이 나를 파헤친다
까치는 찢어발기는 소리이고
까마귀는 둔기로 내리치는 소리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아 시에 진짜가 어디 있니 입이나 다물어라”
그러고는 얼른 ‘건방진 것들’ 하고 웃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까치와 까마귀가
나를 물고 늘어지는 기분이다
- [출처] 이생진 시인님 홈페이지
1929년 충남 서산 출생
1969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 『그리운 바다 城山浦』 『거문도』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반 고흐, ‘너도 미쳐라’』 『산에 오는 이유』 『어머니의 숨비소리』
『오름에서 만난 제주』 『섬 사람들』 등 다수
1996년 윤동주 문학상 수상
2002년 상화(尙火)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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