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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그림자를 먹었네 /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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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18-12-07 09:44

본문

양의 그림자를 먹었네

 

   이재훈

 

 

약한 것은 죄악입니다. 버려져야 하는 짐승일 뿐입니다. 저는 뿔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어요. 늘 방향을 잃고 턱이 깨집니다.

 

모두 빨리 걷고 빨리 먹고 쉬지 않고 일합니다. 강도도 되지 못하고 시체도 되지 못합니다. 저는 한때 그림자입니다. 아는 목소리도 없고 얼굴도 없습니다.

 

흘러가는 무리들에 몸을 섞습니다. 홀로 다닐 용기도 내지 못합니다. 늘 문을 찾아다닙니다. 아침에 나갔다가 되돌아오지 못하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태양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문은 늘 가장 가까이에 있고 때론 가장 먼 곳에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 서서히 멸망해가는 저녁을 봅니다. 매일 제게는 그림자가 생겨납니다. 사라졌다 생기면 풍성한 잎사귀를 얻습니다.

 

땀을 얻고 꿀을 얻습니다. 저는 목동이 아닙니다. 문을 찾지 못하고 한낱 그림자에 놀라는 동물일 뿐입니다.

 

가진 것을 구름과 나누고, 아는 것을 땅에 심고, 성한 것을 하늘에 맡기고 싶습니다. 곧 그림자는 죽습니다.

 

 

               ⸺월간 시인동네2018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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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문학박사

1998현대시등단

시집 명왕성 되다』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문학이론서 부재의 수사학』 『딜레마의 시학』 『현대시와 허무의식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

2012년 한국시인협회상, 8회 젊은시인상, 2014년 제15회 현대시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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