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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가는 길 / 이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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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1회 작성일 18-12-11 09:49

본문

적벽강 가는 길

 

    이병초

 

 

  산길인가 싶으면

  바다가 가깝게 다가왔고

  파도소리를 끼고 걷는다 싶으면

  다시 산길이었다

 

  잡목들 사이로 퀴퀴한 짐승털 냄새가 풍겨오기도 했다 사람 발자국을 물고 있는 풀이

허리를 펴면 새소리가 반짝일 것 같았다 칡넝쿨이 하늘을 가린 대숲을 지나다보면 군인

들이 철수한 초소가 있었고 소망을 적어 철조망에 매단 패들이 갈매기소리에 몸이 들리

기도 했다 느린 걸음을 재촉하듯 길은 앞을 툭 털어내며 바다를 보여주었고 이내 바다를

꼴깍 삼켜버렸다 

 

  파도소리는 멧방석만 한 홍어가 잡혔다는 시절을

  짭쪼롬하게 실어오고, 하섬까지

  바닷길이 열린다는 오늘을

  절벽에 바짝 붙였다

  바위에 산산이 부서져 물러섰다가

  순식간에 밀려와 다시 부서져 튀는 파도는

  절벽 오목한 데마다 쏠릴 것이고

  바위 그늘에서 놀래미 숭어 배를 따다

  비린내 묻은 손으로

  내 귓바퀴를 잡아당길 가시내가

  맨발로 달려올 것 같았다

  거대한 바위들이 몸을 눕히고

  숨소리를 잇댄 십여 리

  석양이면 바위가 붉게 빛난다는 얘기를 타고

  파도는 선사시대에 감기고 있었다

  수십만 년 씻어냈어도 되레

  더 검어진, 사람다운 세상을 못 이루어

  천근만근 검어진 역사가

  내일이란 글씨를 뒤적거리며

  석양을 파도소리처럼 구워먹을 것이었다

 

  저녁놀이 바다를 빗질하기 시작했다 밀물인지 썰물인지도 르고 붉게 반짝이는 잔물결로

검붉은 바위를 쓸어댔다 바다는 몸을 자꾸 뒤집으며 주먹만 한 해를 품에 떨어뜨리고 저녁

놀에 피칠된 적벽강을 갈매기 둬 마리가 쪼아먹었다 집에 가기 싫은 잔물결소리가 반짝반짝

 종이배처럼 접히기도 했다

――――――

 * ‘적벽강은 전라북도 부안군 고사포 해수욕장과 격포항 사이에 있다.

 

 

월간 시인동네201812월호





 

1963년 전북 전주 출생
우석대 국문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1998년 계간《시안》신인상 당선
시집『밤비』『살구꽃 피고』『까치독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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