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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통증 / 양현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662회 작성일 18-12-31 10:18

본문

리운 통증

 

    양현근

 

1

길 건너편 똥개가 컹, 어둠을 한입 물면

온 마을의 개들이 일시에 일어나

컹컹, 적막강산 긴긴 밤을 마구 물어뜯었다

그럴 때마다 아랫마을 불빛이

숲을 질러 처마 밑까지 왔다

장독대, 폭설, 고요

등허리가 시린 문풍지는

도란도란 솔바람소리를 베고 잠이 들고

길 잃은 눈발이 개집까지 마구 들이치는 밤

마루 밑 댓돌에는 밭은기침소리 고이고

눈이 침침한 금성라디오가 혼자 칭얼거렸다

 

2

소년은 꽁꽁 언 잠지를 딸랑거리며

얼어붙은 논두렁 사이를 펄럭거렸다

먼 저녁이 매달리던 참나무에게 돌팔매질을 날려대면

폭설은 마을의 길이란 길 다 지우고

아랫녘으로 가는 도랑의 물소리만 풀어놓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막히면

오늘의 날씨 큰 눈 왔음, 길이 지워졌음

그렇게 일기장에 적었다

소여물이 끓던 사랑방 아랫목

할아버지의 걸걸한 기침도 화덕처럼 끓고

외롭고 심심한 손가락이

장지문 여기저기 숨구멍 뚫어가며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3

낡은 기와지붕이 고드름을 하나, 둘 매다는 동안

소년도 대나무처럼 몸의 마디를 키웠다

겨우내 눈발을 뒤집어쓴 대숲은

어디론가 보내는 울음 소인을 쿵쿵 눌러대곤 했다

아직 산골의 춘삼월은 멀고

산 그림자는 마을 어귀까지 내려와

밤새 호롱불 깜박거렸다

돌팔매질로 멍든 참나무 껍질이 아무는 동안

눈은 몇 번이고 쌓였다가 녹고

그렇게 겨울이 말없이 오가고

기침소리도 녹았다 풀렸다

 

4

궁금한 강바람이

구멍 숭숭한 돌담에 휘파람소리를 내려놓고

봄기운이 얼음 계곡에 숨구멍을 냈지만

어느 해부터 할아버지 밤 기침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통증은 소년의 옆구리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꿈을 꾸면 왼쪽 갈비뼈가 따라 올라오고

오래 숨겨둔 기침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울음의 마디를 쏟아내곤 했다

아프고 시린 말들이 번식하는 계절이었다

 

5

며칠 전부터 왼쪽 허리가 시큰거리더니

왼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푸른 말발굽으로 내달리던 시절

드넓은 풀밭을 겁 없이 질주하다 자주 넘어진 탓일까

사랑한다 사랑한다

당신에게 너무 많은 말을 엎지른 탓일까

등베개를 집어넣으니 비로소 균형이 잡힌다

세상과의 간격에는 적어도

등베개 하나 이상의 거리가 있다는 걸 안다

밤이 되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마른기침, 눌러 참을 수 없는

왼쪽 허리쯤에 도착한 그 저녁의 폭설이여

차마 그리운 통증이여

 

양현근 시집 기다림 근처(문학의전당, 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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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창조문학등단

시집 수채화로 사는 날』 『안부가 그리운 날

길은 그리운 쪽으로 눕는다』 『기다림 근처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추천1

댓글목록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profile_image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폭설이 잦았던 어릴적 고향에 대한 향수
산을 끼고 있는 어느 산촌이 시인의 고향.
시어 하나하나에 그리움이라는 향수가 묻어 난다.
산촌이라 주파수가 잘 전달되지 않는 라디오에서는 지익 지익거리는 잡음이 나오는데,
그 라디오가 금성라디오란다.
왕관에 별을 단 상표들 달고 있는.
내 살던 동네에서는, 지게 한 가득 산더미 같은 라디오를 지고, 한 손에는 벽돌같은 밧데리를 고무줄로 동여 매단 금성라디오를 팔러 다니던 아저씨가 곧잘 지나 다녔다.
반갑다, 여기서 그 라디오를 듣다니.

이 동네는 겨울이면 큰 눈이 내렸을 것이다.
겨우내내 눈이 내리기도 했었을 듯.
한참 천방지방 뛰어다니며 놀 나이에 방 안에 갇혀 지내려니 어린 소년은 얼마나 지겨웠을까.
그 방안에서 들었던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며, 문풍지 침 발라 뚫어가며 내다본 동네의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밤이 되어 반복되는 마른 기침이 왼쪽 가슴에 통증을 가져다 준다, 어린 시절 뛰 놀던 깊은 눈이 퍼붓던 고향이여!

1에서 4까지는 옛 추억, 5는 오늘 밤이다.
큰 눈이 왔음, 길이 지워졌음이라 일기를 썻던 시인은 어려서부터 깊은 감수성이 있었다.

양 시인의 시는 몇 편밖에는 읽지 못했는데, '간격'이라는 시어가 자주 보인다.
이 간격이 시인에게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일까 궁금해 진다.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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