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빛 / 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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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2회 작성일 19-02-26 10:05본문
겨울의 빛
박진성
이 빛들은 누가 쏟았을까
겨울의 빛, 휘황과 찬란을 벗겨내고서 이 빛들은 누가 버렸을까
우리는 걸어가네
겨울의 빛을 걷는 일은 물집 속을 걷는 일
헛것의 아늑함과 투명한 것의 고름을 보게나
곧 터질 것 같은 물집의 아름다움
물집 속을 걷는 일은 그대의 꿈속을 다녀와보는 일
그대는 춥다
그대는 혼자다
그대는 폐허다
우리는 빈집에 기대어 있었네
햇빛의 재가 머무르는 곳에 있었네
막, 개종한 사람처럼 그대는 이 도시에 도착하네
낙담하지 말게나
나도 검은 심연 하나쯤 키우고 있으니
부질없이 무너지는 빛에 대해 끝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대의 푸른 손은 망가진 내 몸을 다 만져야 하리
겨울의 빛
나의 슬픔들은 이 계절에 늙을 것이다
늙은, 폐허의, 빛의 복도를 걸을 것이다
말이 아프면 말을 데리고 손금으로 떨어지는 빛을 따라
그런데 이 빛들은 누가 쏟았을까
나는 겨울의 빛을 입고
나는 겨울의 빛을 입은 그대에게 간다
내가 만지면 그대는 추위에 물들고 말아
저 겨울 빛의 무력함을 보게나
폐허가 되었다는 건 심연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야
겨울의 빛
이 누추한 희망의 종착지는 언제나 그대의 이마
빛은 계속 쏟아지고
그대의 그늘은 떨리리라
졸음처럼 쏟아지는 이 빛들 속에서
녹았다가 다시 어는 저 물의 반복 속에서
걸어가리라
걸어가리라
겨울의 빛 저 무표정한 다정함을 보게나
-박진성 소시집 『저녁의 아이들』(미디어샘, 2018) 중에서
1978년 충청남도 연기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 등단
시집 『아라리』 『식물의 밤』 『목숨』
에세이집 『청춘착란』 『미완성 연인들』『하와와, 저에게 꽃을 주려고』
『저녁의 아이들』 등
제7회 시작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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