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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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36회 작성일 19-02-27 10:15본문
돈
송경동
처 아버님은 빨치산이었다
3년을 산에서, 그리고 3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왔다
평생 보안관찰로 고향에서도 살 수 없었고
수박등 장사 우산살 장사
안해본 것 없다고 했다
결혼하겠다고 찾아뵌 첫날
노동자고 월세방에 살며
더더욱 생활을 돌이켜 반성할 마음이 없다 하자
노기 띤 음성으로
음, 돈이 있어야 하네 돈이, 하셨다
그때 정말 돈이 한푼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내게 돈 이야기 하시지 않았다
자신도 죽을 때까지 방 한칸 없어
셋째딸네 집에서 여섯 달 누웠다 가셨다
가끔 욕창이 난 등 긁어주고
손 다리 주물러드리면 마냥 행복해하셨다
벽제 용미리 공동묘지에
봉분 없이 깨끗이 묻히셨다
십수년이 흘러 나는 아직도 생활을 반성하지 않고
전문 시위꾼으로 집회현장을 쫓아다니지만
가끔 그의 어조로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하곤 한다
조금은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젠 장인어른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2009)에서
1967년 전남 보성 출생
2001년 《실천문학》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산문선집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등 다수
제29회 신동엽창작상, 제6회 김진균상
제12회 천상병 시문학상, 제16회 고산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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