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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 /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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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9회 작성일 19-03-08 09:18

본문

홀연

 

   이승희

 

보이지 않아도 닿을 때 있지

우리 같이 살자 응?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차를 타고

어디든 데려다주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아직 없는 손들에게 쥐어주는 마음 같아서

홀연하다

만져지지 않아도

지금쯤 그 골목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흔들리는 손가락의 미래들

나도 누군가의 홀연이었을까

같이 썩어가고 싶은 마음처럼

매달린 채 익어가는 별

너 때문에 살았다고

끝없이 미뤄둔 말들이 있었다고

사라진 행성이 그리운 금요일이면

없는 손의 기억으로

나는 혼자

방금 내게 닿았다가

지금 막 떠난 세계에 대해

잠시 따뜻했던 그것의 긴 머리카락을 떠올린다

어제의 식물들은 금요일을 매단 채 죽어있다

그것은

원래 내게 없던 문장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혼자 남았다는 말

점 하나가 붙잡고 있는 세계라는 말

- 이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문예중앙, 2017)에서





leeseunghee-150-1.jpg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1988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97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1999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적이 있다』『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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