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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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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5회 작성일 19-03-0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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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호



   흐르는 밤에 밤이 흘러간다. 졸졸 흐르는 소리. 줄줄줄 흘러내리는 소리. 이런 밤에는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를 내며 빛나던 눈빛을 떠올리기 쉽다. 그 눈동자 속으로 스미던 달빛의 냄새를 다시 맡기 좋다. 무턱대고 아름다웠던 사람과 그저 아름답기만 했던 우리의. 흘러간 밤을 쓰다듬어보는 밤. 내 애인의 애인이 나였던 시간을 안아보는 밤. 깊이깊이 흐르는 밤 속에서는 무엇이든 꺼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밤이라는 말 속에 한 생애를 다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듯싶다. 창문으로 비껴드는 달빛. 저 밤의 늑골에 손을 담갔다 빼면 더운 숨 냄새가 손끝에 물들 듯하다. 모두 잠들어야 하는 이때에. 눕지 않는 기억과 눕힐 수 없었던 불행을 기억하면. 쉿. 애인과 애인이 혈전처럼 응고되어 밤의 혈맥 속을 떠돌고 있다. 흘러가는 밤에 밤이 흐른다. 흘러내린다.


ㅡ『공정한시인의사회』(2019, 2월호)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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