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 / 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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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2회 작성일 19-04-15 10:12본문
어떤 나라
강성은
어떤 나라에서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금지되었고
청바지 밀수입업자가 교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집집마다 옷장 속 깊숙이 청바지는 패물처럼 숨겨져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부모가 늙으면 산에 버리러 가야 했는데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며 아들은 새처럼 울었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오는 순간 자신의 몸에 밴 늙은이 냄새
어떤 나라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피아니스트는 타이피스트가
드러머는 대장장이가
가수는 약장수가 되었다
음악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떤 나라에서는
어디가 영토의 시작인지 끝인지 몰라 지도를 그릴 수가 없었다
하루는 요람처럼 작아졌다가
하루는 관처럼 거대해졌다가
하루는 사라지기도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죽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꿈꾸는 것과
오래 잠을 자는 것은 허용되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아무도 살지 않는데
날마다 조종(弔鐘)이 울렸다
-강성은 시집『단지 조금 이상한』(문지, 2013)중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Lo-fi』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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