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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 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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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43회 작성일 19-05-0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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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정병근

 

 

너를 보기 위해 나는 캄캄해진다

검은 흙을 비벼 다지는 방식으로

지문이 지워진 손끝에서 너는 돋아난다

내부를 지탱하던 축이 흔들리고 크나큰 요동이 있자,

길고 짧은 비명을 지르며 너는 뛰쳐나갔다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눈이 맑아질 때까지 백억 년을 보낸 끝에

반짝이며 멀어지는 나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던 밤의 궁리를 다해 어둠을 닦는다

불을 잃은 양초를 바닥에 문질러

칠흑의 거울을 얻었다

캄캄과 깜깜을 온몸에 쟁여 넣고

비탄의 구석구석에 고인다

나는 어떤 구멍이며 물질이며 힘이다

너는 소리와 색과 글자로 나를 부르지만

곧 움푹 꺼질 너의 얼굴이 두려워

눈꺼풀 밖 한 겹 어둠으로 드리워 있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조차 0초의 속도와 옷깃의 전 규모로

잠든 너를 두고 동굴로 가서

물방울의 기둥을 세우고 돌꽃을 피운다

나감과 들어옴의 발끝에 집중하며

한 시 한 초도 너를 놓지 않는 검은 바닥이다

오직 네가 보이고 들리도록

모든 방향을 궁구하는 태초이다

검은 늑골을 뚫고 뻗어가는 빛 빛 빛

너는 광속으로 여럿과 만나고 여럿과 헤어진다

여기저기 동시다발로 나타나고 사라진다

하얗게 타버린 말들 벌어지고 멀어지는 풍경들

이미 되어버린 표정의 그늘과 배경으로

언제나 네 눈앞에 멀리 가까이 있다

있는 만큼의 없음으로, 그 크나큰 동공으로

 

-월간 시인동네2019.4월호




 

 

1962년 경북 경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8년《불교문학》등단
시집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번개를 치다』『태양의 족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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