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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고 있는가 / 이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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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3회 작성일 19-05-07 09:50

본문

누가 오고 있는가

 

   이재연 

 

습기를 머금은 구름같이

흐리게 우는

저녁을,

 

반복해서 뒤집으면

내 손바닥은 뜨거워지고 마을은

 

검은 솔개처럼 멀어져 간다

 

틀린 것과 아픈 것 사이

어느 한쪽이라도 내 편이 되어 살겠다 하면

나와 살림을 차리자, 처음부터 나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말을

너에게 할지도 모르지만

 

희미한 것과 굵은 목소리를 다 잊었다 하고

펼쳐진 언덕에 우슬초나 심어

부정한 것을 쓰다듬어 침상을 새로 고치겠다

그 밤의 서리로 어린 풀들이 하얗게 변하겠다

 

바람이 나무 밑에 쌓이겠다

매달린 것과 떨어진 것 사이,

가지에 매달린 마른 잎사귀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높은 데서 어지러운 데서 언제 떨어지나,   손이 하얗다

 

크고 작은 별들을 표구해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시간에 관한 어떤 말도 하지 말자 듣지 말자

아프지 말자 전쟁에 함락되고야 만 누이여 누이여

 

고개를 숙여

내게 건네주는 푸른 밤의 귓속말과 함께

조용히 강만 따라가자 겨울이 길어졌다

물 위로 흘러가는 청둥오리여

 

강의 노래에 고요히 끌려들어 가는 언덕 위의 나무여

곶의 가장자리에 부유하는 쓰레기여

엷어진 식욕이여

 

보이지 않아서

보이는 또 다른

세계의 뱀이여

 

모든 질서를 다 잊었다 하고

내가 부르는 대로 내게로 오는 물결 위의

날이여 하늘이여

소리여 소리여 갈대 우는 소리여,   누가

약탈되어 우리 가운데서 나누어져

흘러가는가

 

하얗게 말라가는 풀들이여 잎사귀여 숲이여

우슬초를 말려 발이 갈라진 동물들과

비늘이 없는 물고기들을 얹어 태우는 의식의 강물이여

가까이서 누가 오고 있는가

 

내 손바닥은 뜨거워지고

죄를 쉼 없이 뒤적이다,   자꾸 뒤를 돌아다 봤으나

 

검은 마을은 솔개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시산맥》2015년 여름호



이재연 3.jpg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2012년 제1회 오장환 신인문학상수상

제8회 시산맥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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