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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고양이와 소녀 이야기 / 손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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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00회 작성일 19-05-14 09:50

본문

 나와 고양이와 소녀 이야기

 

    손진은


 

  아, 그 시절 우리 안방 옷장엔

  고양이 몇 마리 살고 있었더랬다

  그 곁엔 눈초리 또렷한 몇몇 소녀들도

 

  어머니의 손끝에서 태어난 그이들은

  대낮의 분주에서 돌아와

  밤이면 그곳으로 스며들곤 했던 것이다

 

  옷장 속에서 살던 고양이와 소녀 이야기는

  내 일기장에도

  때론 새벽 내 꿈속에도 옮아붙었다

 

  내 다정한 친구, 이 명상가들은 그러나

  밥상에 올라앉거나

  그릇을 뒤집진 않았다

 

  헐렁한 시절, 자주 빠지던 가난의 늪

  가끔씩 출몰하던 악어떼에 물어뜯긴

  뒤꿈치, 그 휑한 구멍을

 

  어머니는 꽝꽝한 겨울의 한 가운데서

  헝겊이나 스웨터 자락에 가녀린 바늘로

  고양이, 눈매 이쁜 소녀를 양말의 뒤꿈치에

  봄을 부르는 노래와 함께 깃들게 했더랬는데

 

  그 시절의 고양이와 소녀들은

  이야기를 짜던 작가가 먼 길 가시고도

  내 기억의 서랍 속 불씨

  꺼지지 않는 불씨를 물어물어

 

  봄은 온단다, 봄이 오면 뭐할 건데

  때로는 말간 눈동자로 속삭이다

  이젠 완연한 봄이잖아, 중년 가장 튀어나온 뱃속을 향해

  짐짓 어깃장을 놓기도 하는데

 

 -시사사 2017년 5~6월 발표


손진은~1.JPG


경북 안강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5년 매일신문 시평론에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숲에 풀어놓고

저서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한국 현대시의 정신과 무늬

현대시의 지평과 맥락』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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