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굽다 / 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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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5회 작성일 19-06-25 09:22본문
살을 굽다
함기석
어떤 짐승이 울다 게워놓은 슬픈 새일까
이 흑갈색 조약돌
물의 주름진 속살까지 찬 햇빛들 반짝거리고
불길이 파란 핏줄다발 같다
짐승의 끊어진 앞발 닮은 봄날 주일이다
사방은 정강이 살을 잃어 고요하고
마당 가득 흰 먹물처럼
세 겹 네 겹 내 겹으로 번지는 죽음의 살 냄새
아 저기 솥뚜껑 하늘에서 구름도 지글지글 익고 있다
얘야, 천천히 많이 먹으렴,
나는 내 후생의 먼 우주 불탄 집터를 쳐다보다
둥지 잃은 새처럼 말이 야위는데
어머니는 들뜬 틀니로 내 전생 부위 생살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른 성냥개비처럼 웃으신다
웃음은 늘 눈에 쓴 독초고 알이어서
그녀 또한 평생을 생활에 쫓긴 짐승이고 찢기는 살이었으니
하늘 가득 어린 멧돼지 울음 차고 붉다 시다
날과 알 사이엔 아픈 말, 흐르는 살
냄새가 어머니 얼굴을 더듬어 폐허의 문진을 지우고 있다
사랑은 지붕부터 페이지가 찢겨나간
폐가의 웃음 경經이었으니,
모자는 늘 모자라서 뜨거운 빙판이고 언 불판이었으니
어떤 짐승이 울다 게워놓은 새의 뜨거운 심장일까
이 흑갈색 조약돌
어머니 눈동자 속 사월의 불탄 뒤뜰에서
샘물이 흰 날개를 펴고 있다
-《시와 표현》 2018년 3월호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3년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2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공원』 『오렌지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동화 『상상력 학교』
2006년 눈높이아동문학상, 제10회 박인환문학상, 제8회 이형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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