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 김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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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9회 작성일 19-07-22 09:14본문
삼척
김언희
너는 게를 좋아하고
게라면 사족을 못 쓰고
네가 발겨 먹은 게 껍데기만 해도 경주 남산 고분군만은 하고
넌 죽으면 게가 될 거야
되면 좋지 뭐
등딱지를 뜯기고 사지를 뜯기고
발가락 끝까지 꼭꼭 씹혀서 개운하게 발겨 먹히면 좋지 뭐
삼척 망상 무한리필
대게집 무한
리필되는 대게 무더기 앞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올라가는 게 껍데기에 에워싸인 채
대게를 뜯는다 먹어도 먹어도
헛헛한 대게
대게가 아니라 대게의 유령 같은 리필용 대게
게딱지는 종잇장처럼 말씬거리고
살은 흐를 듯 무른
유령 대게
뜯으면 뜯을수록 헛헛해지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휘휘해지고 있다 빈 대롱 같은 게 다리
텅 빈 대롱들이 나를
휘, 휘,
불고 있다 시뻘건 네온 게 다리가
풍차처럼 돌아가고 있는 삼척 망상 무한리필 대게집
무한 리필되는 파도와
무한 리필되는
물거품들이
무람하게 넘나들고 있는 밤의 유리창
누군가 망연자실 들여다보고 있다
제 유령을 처음 보는
유령의 얼굴로
-월간 《현대문학》 2019년 7월호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 졸업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 『보고 싶은 오빠』등
2004년 박인환문학상 특별상, 2005년 경남문학상, 2013 이상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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