滴 ―포에지 푸어 2 / 김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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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7회 작성일 19-08-27 09:46본문
滴
―포에지 푸어 2
김신용
무슨 멸실환(滅失環) 같다
힘들게 지었는데 금세 뜯긴 가건물 같기도 하다
몸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인간 개구리들이 책의 강을 건너갔는지*
대형 서점 구석으로 밀려 난 시집 코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니면, 지난 궁핍했던 시절을 체험하기 위해 청계천 변에 지어놓은
일일관광 숙박용 움막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은 분명 여기 있는데 없는 것 같은 낯빛이다
멸실환... 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린
그 멸실환에 대해 숙고하고 있는 듯한 포즈이다
그래도 눈빛만은... 눈빛만은 메마른 벌판에 떨어진
물 한 방울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구부정한 걸음걸이는....
미쳐서 살다가 죽을 때 비로소 제정신인
사람 같기도 하다 아니, 방금 지나온 인파로 북적이는 시장의
상점들의 거리를 문득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으로
굳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적막만이...
적막만이 자신이 돌아갈 집이란 것도 알고 있는...
그 물방울 하나가 혼밥 아니, 魂밥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
또 그렇게 시간의 쓰레기통에 버려져 갈 것이란 것도 알고 있는...
그래, 한때 존재했었지만 사라져버린... 그 멸실환처럼...
그것이 무슨 유토피아인 것처럼...
*살인자의 기억법.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2017년 1월호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 등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1,2』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 등
2005년 제7회 천상병문학상,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시인광장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제1회 한유성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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