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고구마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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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5회 작성일 19-09-17 11:11본문
너무 큰 고구마
이진명
재래시장에 붙은 좁은 보도
보자기만 한 좌판을 앞자락에 벌리고
골판지 깔개에 웅크려 앉은 한 아주머니
무언가를 꽉 쥐고 먹고 있다
늦은 점심인가 간단하군
그런데 무얼까 처음 본다
사람이 먹고 있으니 먹는 무엇이긴 한가 본데
무얼까 팔뚝만 한 것
길이 굵기가 딱 사람의 팔뚝
흙빛 번진 것 같은 무른 피부색 껍질
계속 꽉 쥐고 껍질째 먹고 있는
옛 무슨 퉁퉁한 방망이 같은 것
무얼까 이상한 먹거리다
수입산일까 별거가 다 들어올 테니
앗, 꼭 그거다
거기 그 나라 남근숭배 사당의 감실
꽃목걸이 주렁 걸치고 느끼하게
길고 크게 곧추세운 그거 링가
반질거리는 딴딴한 흑돌 링가 말고
조금 물렁, 주물주물하는 것 같은
비린 나무 느낌의 링가
급기야 아주머니 앞으로 펄떡 다가가
너무 열중해서 받친 된 목소리로
지금 드시는 거 그게 뭐예요
움막에서 천천히 얼굴을 밀어내듯
아주머니 천천히 얼굴 밀어 올리며
고구마지 뭐여
다시 펄떡 놀래서
안돼, 아줌마, 물이랑 같이 먹어야지, 목메,
뜨거운 물 없어요, 목메, 어떡해,
따뜻한 국물 같은 거랑 같이 먹어야지,
아주머니가 내 아주머니이듯
놓는 말로 완전 임의롭게 쏟아뜨리고 있는
이 한꺼번의 말들 내가 쏟아내고 있는 거 맞아?
이 무슨 이상한, 이 무슨 시추에이션?
아주머니가 옆구리 보따리를 뒤적뒤적하더니
보온병을 척 들어 보인다
예다 물 넣어 왔수 하며 보온병 뚜껑을 돌린다
아주머니의 입속 이빨이 띄엄띄엄하다
너무 큰 고구마
농사일 조금만 알았더라도 알 만한 일이었겠지
너무 큰 고구마도 나온다는 걸
세상 나와 처음 보게 된 너무 큰 고구마 하나를 갖고
이래 펄떡 저래 펄떡 과도한 야단스러움
얼마나 열중했으면 링가까지 튀어 나오냐
하여튼 오늘은 너무 쌀쌀한 날씨라고 춥기까지 하다고
옷 잘못 입고 나와 후회막급이라고
길거리 찬 바닥에 저리 앉아서
싸늘히 식은 고구마 맨입에 막 먹으면 목멘다고
목을 칵 매는 것과 다름없다고
너무 큰 고구마 때문에 열중해서일까 놀라기까지 해서일까
돌아서 가면서도 망상이 그치질 않네
그 아주머니에게도 집에 돌아가면 링가 남편이 있을까...
누워 일어나진 못해도 아주머니 들어서면
애썼수, 그런 인간의 말 할 줄 아는 링가가...
1955년 서울 출생
1990년 《작가세계》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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