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네 점집 / 김해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8회 작성일 19-09-18 11:29본문
해자네 점집
김해자
술은 좋아하지만 술 마시면 눕지 못하는 지병이 있는 그 여자, 술이 출렁거리는 머리에 무슨 책이 들어오리요만 다행히 딸내미 머리맡에 차곡차곡 쌓인 책은 읽어졌다는데, 그 책이라는 게, 회사에서 선택적 복리후생비 조로 들은 강의 책자들이었다는데, 그 딸내미도 참 희한하지, 전문 컴퓨터 강의 하나 빼면 주역 사주명리학 애니어그램과 MBTI 별자리 천문학 타로 수비학까지 동서양 기기묘묘한 학들이 도표와 그림 속에 들어 있었다는데
어느 땐가 그 여자 기초수급자를 위한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갔다, 시무룩 눈도 안 마주치고 진짜 수급자인 것처럼 앉아 있는 통에,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매 하나 찍어서 실실 타로 점을 봐주기 시작했다는데, 그렁그렁하던 눈에서 눈물이 결국 쏟아지고야 말았고, 눈물이 강물이 되어 한번 휘몰아 간 뒤에, 지퍼 속에 갇힌 입들이 너도나도 지퍼를 열고 나와 저도요 저도요 하는 통에 수업을 몽땅 타로 점 봐주는 일로 공치고 말았다는데, 엄마 죽고 망하고 언제 적 손목 긋었단 꽁꽁 짜매논 이야기가 술술 쏟아졌다는데, 고래도 지가 글쓰기 선생으로 왔는데요, 오늘 풀어놓으신 이야기를요, 고대로 써가 오시모 사주도 봐드린타 카이, 그 다음 주 소설 같은 인생 읽어내느라 날밤 새웠다는데, 공짜 좋아하모 복 달아난데이, 협박 반 공갈 반 천원 오천 원 복채 챙겨서 수입도 짭잘했다는데
내는 단 하나뿐인 당신이란 별을 보고 있데이, 사람살이가 뭐꼬, 밥 나눠 묵음서 알콩달콩 얘기 들어 돌란 것 아니겠노, 일하고 놀고 술 먹는 뒤끝마다 신빨 영빨 차곡차곡 쌓은 그 여자 슬슬 영업을 개시했다는데, 말 할 새도 없이 저짝에서 쏟아내서 그 여잔 해 준 말도 별로 없었다는데, 고맙데이 억수로 고맙데이 오천 원 만 원 지폐 이마빡에 붙여줘서 2차 3차 술값도 계산하더니, 머라 넘의 운명을 함부로 씨부려쌀 수 있것노, 니캉 내캉 이리 마 다소곳하모 하눌님이시고 부처님이시고 살펴보지 않것나, 쪼매만 기둘려보래이 고마 꽃멍울이 꽃때옷 될 날이 올끼니끼네, 뻘소리하던 그 여자, 어느 날은 만만한 내 이름 두자 빌려 돌라더니, 걸어댕기는 점집을 차리고 말았으니 그 이름하여 해자네 점집이라 카더라
―계간 《시와 경계》 2018년 봄호
1961년 전라남도 신안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집에 가자』『해자네 점집』
민중 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산문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1998년 전태일문학상 제10회 백석문학상 수상
제13회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