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숙회 먹는 밤 / 최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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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072회 작성일 19-10-10 09:29본문
문어숙회 먹는 밤
최광임
사랑의 기술을 연마하지 못한 여자와 남자가
카멜레온형 인재가 되지 못한 여자와 남자가
문어숙회를 사이에 두고 도란거린다
또 한 번의 봄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중이고
여자가 맥주에 소주를 만다
넘치지 않게 술 따르는 법은 용케도 익힌듯하나
생이란 게 변변치 못해 팔팔한 적 없어,
서로에게 숙회감도 되지 못하였으나
귀는 순하여 참도 잘 들어 준다
한참만에야 문어 한 점 입에 넣다가
사람이나 문어나 사는 게 애옥살이라는 듯
혼자서는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세상이라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행간에 노후가 펄럭인다
여자와 남자가 합쳐야 고작 팔완목(八腕目)이겠으나
여덟 개의 다리로도 육지로 끌려나온 돌문어
가난을 합쳐본들 늙음뿐이 더 늘겠는가마는,
함께 일할 생각 없냐고 묻는 남자 앞에서
같이 살자는 말로 해석해 버릴까
늙은 여자 더딘 계산을 하는 밤이다
―《시와표현》 2016년 3월호
전북 부안 출생
2002년 《시문학》 등단
1987년 진주개천예술제 연극부문 최우수 연출상 수상
시집 『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도요새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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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어숙회, 돌문어,에 빗대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노총각, 처녀의 프러포즈
문어나 낙지는 팔완목의 동물. 여덟 개의 다리를 지니고 있다.
숙회는 푹 삶은 요리.
이를 먹기 좋게 잘라 초장에 찍어, 소주와 곁들이면 최고의 안줏감.
애옥살이는 뭐를 해도 안 되는 가난한 세상살이의 우리말.
카멜레온형 인재가 못 되는 사람들이니 세상 출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사람들.
보아하니 둘 다 노처녀, 총각 되겠다.
둘이 만나 문어숙회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말 잘 들어 주는 여자는 빈 잔에 술을 따라 주고.
아마도 주변머리 없는 남자는 프러포즈라도 하고 싶었을 거고, 둘이 합쳐봐야 여덟 개의 다리를 지녔어도 육지로 끌려 나온
돌문어와 마찬가지라는 셈을 이미 마친 여자는 내심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