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부분 / 문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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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6회 작성일 19-11-22 10:15본문
남는 부분
문보영
나무 식탁에 앉아 방울토마토를 한 개씩 잡아먹는 작가는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간다 그것은 책 속의 남자*에게 줄 먹이다
책 속에는 축축한 나무 식탁 나무 의자 그리고 나무 침대가 있다 나무 침대에 누운, 침대와 크기가 잘 맞지 않는 나그네는 나무틀의 창문을 바라보며 창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첫 번째 인상을 받는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잘려나간 팔다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흘러 다니는 피
작품 속에는 비가 내릴 수 없는데 작품 속 남자는
비 같은 게 좀 그쳤으면 좋겠다며
축축한 마룻바닥 위에 맨발로 서 있다
숲으로 간 작가는 나무와 그림자를 뒤집어쓴 채
팔다리가 긴 나그네들을 기다린다
어딘가 넘치거나 어딘가 모자란 나그네들만이 쓸모 있다는 것은
어설픈 작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팔다리가 쓸데없이 긴 나그네가 지나간다
뒤에서 덮쳐 책 속으로
던져버린다
배가 고파
나무를 물고 늘어지는 그림자의 이미지에 집중하던
책 속의 남자는 나그네를
침대에 눕히고 톱을 간다 호박색으로
질린 나그네의 얼굴
경험상 이것은 꿈이다, 라는 자각은 공포를 더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그네는 창문을 본다 창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은 누가 써먹은 공포이므로 나그네는
저 창문을 열어도 바깥은 현실이 아니다, 라는 공포로
창문에 관한 인상을 이어나간다
거의 다 된 가스통을 꺼내 두어 번 흔든 뒤 브루스타를 건성으로 툭툭 쳐 불을 켜듯
작가는 침대에 맞지 않는 나그네를 잡아다 책 속에 남자에게 던져주고 손을 턴다 그러니까
이야기에는 얼마간 절실하게 짜고 치는 마음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어느 독자가 생각하는 반면
독자들은 잘려나간 팔다리들에 관한 깊은 지식을 얻는다,
고 방울토마토를 집아먹으며 작가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본다
침대에 나그네가 눕히고
경험상 이것은 꿈이 아니다, 라는 자각은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음침한 방
축축한 마룻바닥과 피비린내
책 속의 남자는 환기를 하기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 빛이 바깥으로 조금 새어나가도록 두는데
새어나간
빛은 언제나 현실이었다
*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에 맞지 않는 사람의 팔다리를 늘려 죽이거나 잘라서 죽였다.
-계간 《열린시학》 2017년 겨울호
1992년 제주 출생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
시집 『책기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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