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어머니 윤씨의 베틀가 / 정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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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3회 작성일 19-11-26 10:15본문
서포 어머니 윤씨의 베틀가
정 숙
-애절양 1 [ " 이 어미는 비록 끼니가 없더라도 네 형제가 읽어야 할 책은 한 권도 놓치지 않을 테다. 그러므로 .....이 어미의 허리가 휘도록 '이 책을 보고 싶습니다.' , '저 책을 보고 싶습니다.' 하는 게 효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라." ]
1.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생일 때마다 형제가 색동옷 입고 춤추더니
유복자 내 아들
"아직껏 향내 나는 책과 구린내 나는 책을 구별하지 못한단 말이냐?" 며
물푸레회초리로 꾸짖던 그 시절
지아비 먼저 보내고 베 짜고 수놓는 것으로
빌린 책을 베껴서 가르쳤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서해 노도 사이에서
서로 위리안치당하는 일 없었을 텐데
아들 유배당한 죄인은
날짐승이 심장을 쪼아 먹는 유배지로 떠나야 하지
장하다! 내 아들
날 선 칼에 꺾이지 않는 성품 부끄러워 마시게
그댄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니라
이제 생의 뒤안길에서 숨은 바람의 길 찾아보시게
2. 파도 속 굴곡진 어둠과 생을 씨줄 날줄로 촘촘히 베를 짜시게
꼿꼿한 뼈대씨줄에 천둥소리, 피눈물 날줄이
살결 촘촘한 천 한 필 남기리니
긴 한숨천 말코에 말면서
도투마리 돌려 깨진 거울 속 날실 한 고괭이 풀면서
온갖 잡념 실꾸리 든 북집과 바디집 바쁘다보면
뭔가 환한 소리길 나타나지 않겠는가?
적막이 짠 그리움 속 눈물구비
회심의 잿물에 헹궈 햇빛에 바짝 말려야 한다네
업장이 조금이라도 소멸되어 반짝 반짝 빛나는 천
수틀에 한 뜸 한 뜸 발효시킨 자수들
구름 이야기로 살아나리니
여낙낙한 지어미 얼굴도 아이 해맑은 웃음도
솔잎수 뜨기 하다보면
먹구름은 빠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라
3. 저승도 모자간의 마음 오가는 길 막을 수 없을 터
자네 탄식과 의구심 다 씻은 옷감으로
수의 한 벌 손 박음질해 에미 무덤에 덮어 주시게
저승도 모자간의 마음 오가는 길 막을 수 없을 터
목 놓아 한 번 불러보노라
내 아들 선생(船生)아,
에헤요 베틀을 놓자 베틀을 놓자 *
베 짜는 어미의 사랑 노래에 근심만 지는구나.
*베틀가의 후렴
―정숙 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 2015)에서
경북 경산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 계간 《시와 시학》 등단
시집『신처용가』『위기의 꽃』『불의 눈빛』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등
제1회 만해님시인상 작품상 수상
2015년 대구 시인협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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