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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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7회 작성일 20-03-02 10:12본문
배교
이현호
혼자 있는 집을, 왜 나는 빈집이라고 부릅니까
흰 접시의 외식(外食)도 흠집 난 소반 위의 컵라면도 뱃속에 들어서는 같은 눈빛입니다
“죽기 살기로 살았더니 이만큼 살게 됐어요.” 혼자 있을 때 켜는 텔레비전은 무엇을 위로합니까
이만큼 살아서 죽어버린 것들은
변기 안쪽이 붉게 물듭니다, 뜨겁던 컵라면의 속내도 벌겋게 젖었습니다
겨울은 겨울로 살기 위해 빈집으로 온기를 피해 왔지만, 커튼을 젖히자 날벌레같이 달려드는 햇빛들
사랑을 믿기 때문에 사랑했을까, 삶을 사랑해서 살아가고 있을까
밥을 안치려고
손등은 쌀뜨물 안에서 뿌옇게 흐려진다
네가 없는 집을, 나는 왜 빈집이라고 불렀을까
- 이현호 시집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중에서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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