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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6회 작성일 20-03-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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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들

 

   조정인


 

생활 바깥으로 나가 생활을 간섭하는

죽은 적 없이 죽음의 내용을 출력하는 삶과 죽음의 얼굴 각도와

의상 패턴을 끝없이 바꿔가며 재배열하는

 

창문에 기댄 그그녀들의 사소한 감정의 미풍과 회오리가

, 올리브 잎사귀를 흔들다가 해변의 검은 모래밭을 휩쓸고 지나가는

오타발로의 눈먼 샤먼 기도소리가 소나기처럼 들이치는

신의 폐허와 신생이 번갈아 출몰하는

고대인의 깨진 잠에서 빠져나온 그림자들이 도서관 열람실을

치렁치렁 배회하는, 혹간 그들의 어둑한 음성이 들려오는

늙은 수학자의 호주머니에 뒤척이는 에우클레이데스의 돌멩이와

양서류와 식물들의 혼이 일렁이는 허수의 꿈을

사막수도원의 긴 회랑이 소실점 바깥으로 하염없이 이어지는

폐가의 마룻장에 내려앉은 먼지와 이제 막 도착한 햇살을

그곳, 깨어진 창유리에도 어김없이 분배되는 아침과 저녁을

테두리도 중심도 시제도 없는 대평원의 흑암을

그곳에서 발송된, 봄날 아지랑이 아련한 흔들림을

한 송이 꽃을, 꽃 속에 부서지는 일만 파도를

 

낱장으로 재단해서 차곡차곡 묶은 이것을, 누가

책이라 했나

 

모든 불가능이 적힌 신의 완강한 주먹을 펴려는

무례한

불굴을

 

엎질러진 밤의 검은 포도주에 다 젖어

농담처럼 뭉개진

 

  계간 :든시2019년 봄호 

 

jojungin-200.jpg

 

1998년 《창작과 비평 》등단
제2회 토지문학제 시부문에서 대상
시집『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장미의 내용』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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