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뼈 /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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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54회 작성일 20-05-04 21:03본문
복숭아뼈
최금진
복숭아꽃 피던 시절
도시락을 싸서 너와 소풍 가던 기억 단단하다
너와 먹던 복숭아 조각이 어떻게 발목까지 내려가
복숭아뼈 화석이 되었을까
나는 너의 발뒤꿈치를 가만히 물었다
노리기 좋은 희디흰 발목이었으니까
달콤한 독 잔뜩 오른 독사가 되어
우리가 나뭇가지에 물컹물컹한 몸을 쪼개어 열려
거꾸로 익어갈 때
너무 오래 걸어와 돌아가는 길을 잊은 한 사람은
기꺼이 그 과실을 따먹었으니
너의 발목에 족쇄처럼 사랑은 자취를 남겼나니
복숭아뼈엔 복숭아 먹던 흔적이 있어서
네 희고 향긋한 발목을 보면
죄는 익어가고
아름다운 기억은 이렇게 모든 여정을 걸어와 발목에 모여 고였나니
그 굳어버린 호수의 뼈여, 둥근 바닥이여
복숭아꽃 피는 시절에 우리는 한 나무에 달려
우리의 유방과 엉덩이와 발그레한 얼굴을 나누어 가졌나니
그 무게의 하중이 찬찬히 미끄러져
가장 낮은 곳으로 쌓인 채 굳어갈 것을 알면서도
꿀벌처럼 달콤한 것을 탐했으니
내 이빨엔 독이 깊어가고
네 눈알엔 벌겋게 슬픔이 여물어
툭, 가장 낮은 아래로 떨어져 오래 굳어갔으니
⸻계간 《문학과 사람》 2020년 봄호
충북 제천 출생
1994년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년 제4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2001년 《창작과비평》신인상
시집『새들의 역사』 『황금을 찾아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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