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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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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7회 작성일 20-05-12 15:56

본문

 

   이혜미

 

 

과육은 핑계였지

깨어져야만 선명해지는 눈동자들이 있었으니까

 

구겨진 씨앗을 입에 물고 웃는다

 

기다렸어

울창해지는 표정을

매달려 조금씩 물러지는

살의 색들을

 

우글거리는 비명들을 뱃속에 감추고

손가락마다 조등을 매달아

검은 씨앗을 키우는 나무가 되어

 

오래 품은 살()은 지극히 향기로워진다

 

뭉개질수록 선명히 솟아나는 참담이 있어

마음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나무는 침대가 되고

어떤 나무는

교수대가 된다

 

매일 밤 들려와

나무들이 개처럼 죽은 개처럼

허공을 향해 짖어대는 소리가

 

열매들이 다투어 목 맨 자리마다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집으로『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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