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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신사 / 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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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43회 작성일 20-06-09 15:51

본문

말의 신사

 

   정병근

 

 

근사한 말이 어디 있나

말을 많이 한 날은 마음이 켕긴다

후환이라는 말 참 두렵다

 

말이 없는 사람은

분노를 감춘 사람

말을 쟁여두면 병이 온다

기괴와 기형으로

 

달변은 앙금을 남기지

거짓말을 복용한 날은 손톱을 깎는다

안경을 닦고 책갈피를 문지른다

 

나를 베어 문 웃음이

일생의 말들을 훑으며 지나간다

뻥 뚫린 폐점처럼

 

근사한 말이 어디 있나

근사한 말이 어디 있나

중독자의 눈빛으로

 

말은 병든 난간에 앉아

지나가는 얼굴들을 쬔다

입을 열면 죄가 툭 튀어나올 것 같아

큼큼거리며 모자를 고쳐 쓴다

 

 

   ⸻월간 시인동네》2020년 5월호



 

 

1962년 경북 경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8년《불교문학》등단
시집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번개를 치다』『태양의 족보』눈과 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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