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 박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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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032회 작성일 20-06-24 15:56본문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백석 시 풍으로
박미산
경복궁 지나
금천시장을 건너오면
흰 당나귀를 만날 거예요, 당신은
꽃피지 않는 바깥세상일랑 잠시 접어두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아요
뜨거운 국수를 먹는 동안
흰 꽃들은 서둘러 떠나고
밀려드는 눈송이가
창문을 두드려요
펄떡이던 심장이 잔잔해졌다고요?
흰 당나귀를 보내드릴게요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지낸
푸릇푸릇했던 당신의 옛이야기를
타박타박 싣고 올 거예요
흰 당나귀가 길을 잃었다고요?
바람의 말과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오세요
불빛에 흔들리는 마가리가 보일 겁니다
우리 잠시, 흰 당나귀가
아주까리기름 쪼는 소리로
느릿느릿 읽어주는 시를 들어보자고요
⸻시집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
2006년 《유심》 당선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남양주 조지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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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시에서 닥터 지바고를 본다
마가리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오막살이'의 니북 사투리.
이 시를 읽다 보면, 닥터 지바고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라라를 마차에 태우고 전쟁을 피해 간,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어느 시골의 별장. 그 창으로는 사계의 풍경이 지나갔다.
국숫집의 창으로 꽃이 눈으로 바뀌어 지나는 풍경이 이와 같다.
당나귀를 말로,
나타샤를 라라로,
마가리를 그 시골의 별장으로 대치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마지막 구절이다.
꽃 피지 않는 세상일랑 잠시 잊고, 수성동 계곡 혹은 백사실 계곡을 찾아 잠시 머리라도 식힐겸 가볍게 마실이라도 다녀올까나. 흰 당나귀에 나타샤를 태울 순 없어도 어느새 고조분하게 와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