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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욤 / 하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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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74회 작성일 20-07-20 14:28

본문

고욤

 

   하여진

 

 

 

절취선이 없는 나무를 알고 있다

 

새들이 단단한 부리를 나뭇가지에 닦고 있는 동안

어둠이 숲의 안쪽에서부터 층층 번져온다

눈물 껍질만 남아 있는 겨울 숲속에

부음 봉투처럼 서 있는 고욤나무

 

결빙도 없는 인가의 울타리 안에는

야생을 접붙여진 대봉감나무들이

무릎께의 절취선을 흉터처럼 드러낸 채

배부른 안식에 화롯불을 쬔다

한 소절 적막한 기우 위로 눈이 쌓인다

 

별들이 동전처럼 짤랑짤랑 빛나는 하늘 강 위로

새들의 울음소리 얼어붙는다

폭설이 휩쓸고 간 산등성이 위로

싱싱하게 쌓이는 보랏빛 달빛

소한을 밀어내고 대한이 숲을 점령할 때쯤

고독과 고독 사이

얼었다 녹았다

거무튀튀한 몸 안으로 단물이 차오르는 고욤

 

번식만 하다 죽어가는 모견처럼

검은 숲에 처박혀

가슴팍에 파고드는

야윈 바람의 새끼들에게

수백 개의 젖을 물리고 있는 슬픈 토종의 운명

 

쪼글쪼글한 시간 사이로

검은 숲의 시간을 넘으면서

불어오는 야생의 바람

절벽 끝에 새겨진 스키드마크

얼어붙은

어둠의 맛

 

 

             ⸻계간 포지션2020년 여름호

 

1960년 광주 출생

2009시인세계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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