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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체 /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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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65회 작성일 20-08-19 13:24

본문

흘림체

 

  유종인

눈꺼풀 내리면

깜박 저녁이 밤으로 머릴 디밀 것 같은 때

아까워라

도로 아까워서 저녁 하늘을 보느니

저 눈썹이 짙어진 하늘 가에

기러기 떼인가 청둥오리 떼인가

멀고 어둑해서 어느 것이어도 틀리지 않는 새 떼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채찍처럼

제 무리를 휘갈겨 간다

어디 한 번 내 허리에 아주 헐렁하게 감아 보고도 싶은

흘림체의 허리띠가

조였다 풀었다

내둘렀다 감았다

으늑한 운필(運筆)이 낙락한데

저 반가운 울음이 섞인

흘림체가 번지듯 내려앉은 곳,

거기 들판이나 샛강 가에 가며는

등 따신 햇빛을 쬐며 부리로 땅에 점자(點字)할 새 떼들,

그 흘림체가 모이 쪼는 곁에

나는 바람의 먹을 가는 나무로나 서 있을까

무엇을 쓰든 사랑의

허기를 면하는 길로

발길이 번지는 흘림체들

 

            ⸻계간 시인수첩2020년 여름호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시부문 당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사랑이라는 재촉들』『양철지붕을 사야 겠다』숲시집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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