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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햇살 / 한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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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64회 작성일 20-11-18 14:03

본문

어쩌다 보니, 햇살


   한용국

 

 

오늘은 몸 안에서
종이 인형이 걸어 다닌다


필연과 우연 사이에는
어떤 빛이 떨고 있을까
입구가 노래로 이루어진 숲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뭇잎들은 날카롭게 빛났지
나뭇잎들의 비명 속에서
질 나쁜 사람이 되거나
성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노래가 끝나고 난 뒤
숲을 지나 와
여기, 뒤꿈치에서 정수리까지
서서히 차 올라온 울음


참혹해진 마음은
그림자마다 돌을 얹어 두고
길게 늘어나는 얼굴 속에서
눈동자를 열어놓고
바깥을 구경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만
종이 인형은 또
쉽게 접하기도 하겠지만


고개를 숙이고
햇살이 기우는 방향으로
울음을 쏟아내고,
몸속으로 몸을 구겨 넣고 있는데


한 아이가 웃으며 나에게 '아빠 아빠' 부르고 있다

 

 


 ⸺시 전문 계간지 발견2020년 가을호



 

1971년 강원도 영월 출생
2003년《 문학사상》신인상
건국대학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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