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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 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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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7회 작성일 20-11-30 13:28

본문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서정임


안개가 몰려왔다

집들이 지워진 창밖 모과나무를 휘감던 나팔꽃이 희미하게 떠있다

 

전화가 없다

매일아침 켜는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처럼

어김없이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던 너의 음성이 없다

우리의 만남은 이토록 쉽사리 채널 돌릴 수 있는 가전제품 같은 것이었던가

 

고양이처럼 웅크린 내기 너를 음미한다

네가 남기고 간 바람을 생각한다

내 귓가에 주입되던 너의 노래는 이 사막 어느 한 구석에도 고정될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잠시 내민 손이었을 뿐

 

외면은 무한채널의 시작이다

온몸을 감싼 여운을 걷고 또 다른 너를 찾아 나아가는 일이다

고소해고소해 아몬드를 먹는다

너의 입맛에 길들여진 나를 지운다

하지만 쉽사리 걷히지 않는 우리의 온난화

 

서서히 안개가 걷힌 집들의 형체가 뚜렷해진다

또 다른 나무를 휘감아 오르고 있는 나팔꽃

 

저 새로운

 

너와 나의 길이 푸르다

 

 

⸺서정임 시집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sji.JPG


  전북 남원 출생

 2006년 계간 《문학·선》등단
 2012년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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