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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 / 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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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2회 작성일 21-01-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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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

 

   신정민

 

 

  감식계 형사였던 그는 퇴직하면서 운전면허증에 증명사진 옮기는 일을 했다 창이 없는 작은 방 하나를 암실 삼아 들어가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붉은 불빛 아래서 서서히 살아나는 얼굴들을 씻어내고 건조시키는 일 그의 몸에선 항상 현상액 냄새가 났다 밥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3×5 사이즈의 무표정한 얼굴이 그 사람을 증명했다 산과 알칼리를 견디는 플라스틱 그릇들 속에서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태어났다 비닐 시트처럼 바스락거리는 눈동자가 선명해지길 기다리는 흑백사진술, 세상엔 같은 귀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다 저마다 다른 콧날과 광대뼈가 포인트였다

 

  그보다 열 배 백 배 일을 더 잘 해낼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 그는 하던 일을 잃었다 한두 해만 더 했어도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그의 늙은 여자는 지난날이 아쉬운 듯 말하고 말하고 말했다 늦은 밤 지상으로 달리는 지하철을 볼 때마다 소용없게 된 그의 필름들이 재생되었다 불빛이 망쳐 놓은 생의 필름들 칸칸마다 채워져 있는 안전광 속에서 짓이겨진 피사체들 제대로 어두워 본 적 없는 도시의 길쭉한 스테인리스 그릇이 차르르륵 사라지고 나면 버려진 필름에 남아 있던 현상액 냄새가 훅 달려들었다


    ― 《문장웹진2020년 10월호




전북 전주 출생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집『꽃들이 딸꾹』『뱀이 된 피아노』 』『나이지리아의 모자』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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