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 엄재국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34회 작성일 15-12-02 08:40본문
낙화
엄재국
꽃잎에 앉았다 날아가는 나비는 원래 꽃이었다
몸속,
치밀어 오르는 꽃잎의 떨림이 꽃송이를 뛰쳐나온 것이다
벽의 열망이 창문을 내 걸듯
한 발짝도 들일 수 없는 독방에서
빛깔의 벽에 구멍을 뚫고
향기의 창살을 휘어 겹겹의 높은 담장을 뛰어 넘은 것이다
한때
훨훨,
감옥과 감옥 사이를 배회하는 저 탈옥자를 찾으러 다닌 적 있다
권총도 몽둥이도 없이 맨 손으로 잡은 내 손엔 철컥, 수갑이 채워진 것이다
한없이 가벼운 자유를 손에 쥐고 나는 무엇을 잃었는지
나는 어떤 높은 곳을 꿈꾸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성곽 같은 꽃잎의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이 둥근 가시의 탈옥자에 질질 끌려 다녔다 한 시절 봄은 가고 저녁이 되어서야 찌그러진 수갑을 겨우 풀어놓으며 그저, 손에 묻은 먼지나 툭툭 털어보는 것이다
꽃 지는 법을 나는 너무 일찍 배웠다
경북 문경 출생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정비공장 장미꽃』 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