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바닐라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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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8회 작성일 21-02-20 16:18본문
뜻밖의 바닐라
이혜미
귓바퀴를 타고 부드럽게 미끄러졌지. 미묘한 요철을 따라 흐르는,
그런 혀끝의 바닐라.
수없이 많은 씨앗들을 그러모으며 가장 보편적인 표정을 지니려. 두
근거리며 이국의 이름을 외웠지. 그건 달콤에 대한 첫 번째 감각. 사라
지는 것들에 대한 각별한 취향.
녹아내리는 손과 무릎이 있었지. 차갑고 뜨겁게 흐르는, 접촉이 서
로를 빚어낼 때. 소리의 영토 안에서 나는 세로로 누운 꽃. 손끝에서
점차 태어나. 닿아 녹으며 섞이는, 품이라는 말.
그런 바닐라. 적당한 점도의 안구를 지니려. 무엇을 얼마나 더 미끄
러지려. 잃어버리는 순간 온전해지는 순한 눈꺼풀이 있었다. 모르는 사
람을 나는 가장 사랑하지. 반짝이는 촉수를 흔들며 달려가다 흠뻑 쓰러
지는.
―이혜미 시집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사, 2016)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집으로『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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