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걸었어 /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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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16회 작성일 21-03-04 20:35본문
서쪽으로 걸었어
장옥관
그늘이었지. 해는 서쪽이었어.
개나리꽃은 지고 없었어. 잎만 무성했어.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
비둘기들이 잔디 씨를 쪼고 있었어.
죄다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어.
애초부터 다 서쪽이었는지도 몰라.
복면을 쓴 나무들이
어제의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있었어.
유방이 불룩한 여자들이
분홍 마스크를 쓰고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었어.
서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아.
돌 자갈이 많은 개울이 흘러가고 있었지,
물살에 한쪽 다리 담근 채 흰 새들이
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었거든.
서쪽이라곤 말하지 않겠어.
바람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어쩌면 애초에 넌 없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믿고 싶어.
서쪽엔 고여 있을 거야. 흘러간 강물, 지는 해.
서쪽에 기대고 싶어.
서쪽을 견뎌야겠어. 네 등 뒤에서
얼굴을 가리고.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2월호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 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1987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황금 연못』 『바퀴 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등.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김달진문학상, 일연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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