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명랑 /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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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8회 작성일 21-06-08 20:15본문
어느 명랑
이규리
취한 사람들은 한쪽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 저녁에 취기들이 모여 모처럼 명랑했다
조금 후에 제가 저를 모른다 하더라도
저녁은 자유한가 시절은 듣고 있는가 따위
일행이 조금씩 더 기울어지고 있을 때
자신을 남쪽에 산다고 소개한 사람이 일어나
내 슬픔을 수신하겠다고 했다
내 것이랄 수도 아니랄 수도 없는 이 헛헛한 소유에 대해
더 기울어져야 하나
그러자 다음에 일어선 사람은 내 유언을 받겠다고 했다
불빛에 사람들의 무늬가 어른거렸다
네모 안에 고인 잡다한 공기, 어렴풋한 웃음소리
슬픔 너머 있음과 없음 너머
그 전부를 받겠다는 건 서늘한 의지로 읽어도 좋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무엇보다 나의 것엔 불운이 깃들어 있다 말해버렸는데,
취하다가도 그런 단어엔 놀라운 기운이 들곤 하지
달리 이렇게 말해 볼까
내일 아침이 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사람아, 내가 당신을 살게
참혹이 취기에 싸여서
안개처럼 자욱한
아름다운
그런
명랑의 자리가 있었다
―《문장웹진》 2021년 06월호
경북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 『앤디워홀의 생각 』『뒷모습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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