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모자 /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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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53회 작성일 21-06-14 22:01본문
노래하는 모자
반칠환
그는 창고를 짓지 않았을 때에도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 나를 들여 양치기로 삼았다. 그는 내가 노래할 때마다 모자를 하나씩 씌워준다. 나는 점점 높아진다. 노래를 들은 양들은 하나씩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 노래하는 나는 입이 있지만, 반짝이는 별들은 항문조차 없다. 노래를 할 때마다 모자는 높아지고 나는 점점 납작해진다. 나는 그의 창고에 매혹되어 종종 그를 잊지만, 그는 때마다 나를 불러 찬미하라 한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가 모든 것이 부족한 나를 찾는다. 어디에나 있어도 안 보이는 그가, 어디에 숨어도 보이는 나를 찾는다. 처음엔 목이 쉬도록 노래 불렀지만 이제는 허밍으로 노래한다. 절창으로 부른다고 그의 영광이 높아지고, 음치로 부른다고 광영이 낮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늘지도 줄지도 않는 잔칫상에서 그가 왼손에 든 것을 가져다 오른손에 쥐어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제는 그의 기쁨을 노래했지만 오늘은 나의 슬픔을 노래한다. 마지막 양이 사라지고 모자가 발목을 덮으면 나도 별이 되리라.
ㅡ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1, 6월호)
1963년 충북 청주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2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
시선집 『누나야』 시평집 『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 『뉘도 모를 한때』
『꽃술 지렛대』『새해 첫 기적』 장편동화 『하늘궁전의 비밀』 『지킴이는 뭘 지키지?』
인터뷰집 『책, 세상을 훔치다』 등
1999년 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
2002년 서라벌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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